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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World] 터키 카파도키아, 자연이 빚은 기이한 버섯바위
하늘 사랑™
2008. 7. 18. 12:20
[Tour World] 터키 카파도키아, 자연이 빚은 기이한 버섯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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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가 보여주는 경이로운 풍경은 자연이 아니고서는 만들 수 없다.
약 300만년 전에 일어난 화산폭발과 지진활동은 카파도키아의 땅을 비틀고 솟구치게 해 기괴한 모양으로 변형시켰다. 그 뒤 오랜 세월 동안 지하수와 비바람이 이 땅을 깎고 조각했다. 화산, 지진, 물, 바람이 수백만 년의 세월 동안 합작해 이토록 기이한 풍경을 빚어낸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손길이 약간 더해졌다. 로마시대 이후 탄압을 피해 도망친 그리스도 교인들이 카파도키아로 피란을 왔고 이들이 굴을 파고 숨어 살았던 것이다. 바위에 무수히 뚫린 동굴집은 모두 이들이 거주했던 흔적이다. 바위에 집을 만들었던 이유는 바위가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무른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굴을 파기 쉬웠을 뿐더러 황량한 고원지대라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나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파도키아의 역사를 훑어보면 이곳에 왜 사람들이 살게 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카파도키아에는 BC 5000년쯤 이미 여러 개의 소왕국이 있었다. 이어 BC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철기를 썼다는 히타이트가 제국을 세웠다. 이어 프리지아와 리키아, 페르시아제국, 알렉산더제국, 로마제국, 비잔틴제국을 거쳐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차례로 카파도키아를 점령했다.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어로 말들의 땅. 페르시아에 조공으로 바쳤던 말의 고장이다.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교역로였던 카파도키아는 늘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언제나 약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적당한 암굴을 주거지로 선택한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암굴 주거지가 도시화한 것은 8세기 전후다. 이때는 이슬람교가 크게 확장하면서 터키에서 기독교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슬람교도의 탄압을 피해 카파도키아로 몰려온 기독교인들은 데린쿠유나 카이마르크 같은 암굴도시를 건설했다.
11세기쯤에는 카파도키아의 인구가 7만명에 달했고, 그들이 바위를 파서 만든 암굴 성당이나 수도원이 카파도키아 전역에 2000여 개나 됐다. 이 중 괴레메 야외박물관에 샌달교회, 다크교회, 바바라교회 등 10여 개 교회가 남아 있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카파도키아는 기독교 성지로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바위에 굴을 뚫는 것으로도 모자라 나중에는 아예 땅을 파서 지하에 도시를 만들었다. 지하도시는 데린쿠유를 비롯해 와즈코낙, 아지굘, 타틀라른, 마즈 등에서 발견됐다. 학자들은 더 많은 지하도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직접 가본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통로를 지나면 꽤 널찍한 방이 나타나고 다시 지하로 내려가게 돼 있다.
길이 복잡해서 관광객들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관광객을 위해 붉은색 화살표는 지하로, 푸른색 화살표는 지상으로 간다는 표시를 해놨다.
지하도시의 깊이는 80m로 약 20층 규모. 이 중 지하 50m 정도만 개방된다. 주택과 학교, 식량저장고, 우물, 환풍 통로, 밥 지을 때 나온 연기를 가둬 두는 방, 지하교회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약 3만명의 사람이 6개월 동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데린쿠유에서 10㎞ 떨어진 카이마르크까지는 마차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큰 지하 통로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 이것만은 알고 떠나요
△항공=터키항공(월ㆍ수ㆍ토요일)과 대한항공(화ㆍ금ㆍ일요일)이 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스탄불까지는 11~12시간 소요된다.
△시차=한국보다 7시간 늦다. 3월 말에서 10월 말까지는 서머타임을 적용한다. 6시간 늦다.
△통화=통화단위는 예테르(YTL, 예니터키리라)를 사용한다. 요즘 환율은 1달러당 1.2예테르 안팎.
△기후=우리나라 날씨와 비슷하다.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크다. 카디건이나 얇은 재킷 정도는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